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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피는 春三月. 바야흐로 봄이라 일컬어지는 계절이 차가운 회 색빛 도시에도 머무려는 이 때. 부조리한 하얀 눈발이 흩날리며 인공의 산물들을 물들이고 있었다. 수십층을 넘나드는 거대한 빌딩들 사이로 거미줄 같은 아스팔 트의 도로가 펼쳐진 공허하기 짝이없는 도시는 점점히 하얗게 물들어가고 있었다. "기억나지 않아." 무감한 목소리가 차가운 도시의 귀퉁이를 울렸다. 칠흑의 머리 를 길게 늘어뜨리고 선 그는, 선을 가리운 은색의 롱코트 때문 인지 알 수 없는 모호함을 지니고 있었다. "기억나지 않아..." 반복되는 목소리. 기계적인 반복일런지도 모르지만 그는 미동 조차 없는 자세로 단순히 그 말만을 내뱉고 있었다. 그리고 어 색한 움직임으로 오른손을 들어 올렸다. 천천히 움켜쥐었던 주 먹을 펴자 그의 손에서 은색의 십자가가 모습을 드러냈다. 뒤엉킨 진득한 피. 놓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일까? 십자가는 그 의 피로 붉게 물들어 있었다. 그런 십자가를 바라보는 그의 시 선에서 투명진 물방울들이 흘러 내리기 시작했다.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 사이로 그의 입가가 조금씩 일그러져 갔 다. "...기억나지 않아..." 망연한 목소리. 천천히 십자가를 움켜쥔 그는 차가운 아스팔트 바닥에 힘없이 무릎 꿇어 버렸다. 새하얀 눈이 쌓여가는 사이로 그는 움켜쥔 주먹으로 바닥을 내리치기 시작했다. 기계적이고 반복적인 동작. 뜨거운 피가 사방을 찬연히 붉게 물들여도 그는 멈추지 않았다. "기억나게 해줘!" 고요한 도시를 가로지르는 깊은 울부짖음이 토해졌다. 기계적 인 반복이 아닌, 혼탁한 감정이 혼합된 그 외침은 다만 잠시간 의 정적을 깨뜨릴 수 있을 뿐이었다. 도시는 다시금 공허해졌 다. 처음과 마찬가지로. 달라진 건 그의 모든 것이 정지되었다 는 것 뿐. 일순 꺾여졌던 그의 머리가 하늘을 향했다. 시리도록 아린 하얀 눈을 맞으며 그는 나지막히 속삭였다. "나는... 누구지?" 회색빛 공허한 도시에 홀로 남겨진 채, 모든 것이 멈춰버린 그 는 다만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꽃피는 春三月 흩날리는 눈발 사이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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